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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nd of plenty

where is the love? -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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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is the love? -7

31KKH 2014. 4. 13. 12:07

 

 

 

 

where is the love?

-7

 

 

 

 

 

 

 

 

 스코틀랜드의 날씨는 런던보다 좋지 않기로 유명했다. 수도 에딘버러의 건물들은 대부분 그을린 듯한 느낌으로 주로 중세시대를 생각나게 했는데, 맛없는 음식들과 우중충하고 흐린, 비도 자주 오는 도시에서 찾은 즐거움이란 에딘러버의 성에 가는 일이었다. 시끄럽고 요란스러운 것들은 멀리 하면서 관광객들이 만들어내는 북적거림에 섞여드는 건 좋아한다. 거리에 무성히 솟아난 사람들의 빈틈을 일일이 찾아들어야 하고, 눈길이 닿는 곳마다 순간을 찍기 위한 각양각색의 몸부림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항상 같은 자리에 머물러있는 입술이 움직이는 일은 없었고 되려 호선을 그리기도 했다. 거리에서 마주친 흄의 동상은 유독 발가락이 반질반질하게 빛났다. 바랜 청동의 금빛 발가락. 준면은 성에 가는 날 중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동상을 만졌다.

 

 - 넌 미신을 믿어?

 - 난 현명해지고 싶어.

 

  발가락을 만지면 살아 생전의 그처럼 똑똑해진다나 재수가 좋다나. 성에서 쭉 내려오면 펼쳐지는 로열 마일을 걷다가 동상을 만지고, 그게 신성한 의식이라도 되듯 에딘버러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길을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선다. 좁고 가파른 골목길들은 탐정 놀이라던가 은밀한 거래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야 할 것처럼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Beautiful things don't ask for attention. 아름다운 것들은 정작 시선을 원하지 않는다.' 인적이 드문 구석구석의 골목길을 표현한 문장은 아이러니 하게도 스스로를 빼다 박았다. 주목받지 않는 순간에도 아름다움은 존재한다. 자연스럽게 빛나고 있는 너와 닮았어. 준면은 그 말에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 고작 동상 발가락을 만진 것만으로 그처럼 될 수 있다고 믿는다니.

 

   인과라는 것은 언제나 불확실한 것이며, 세상에는 그럴듯한 '개연성'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던 흄의 철학과 아귀가 맞지 않는 소문이었다. 콩 심은데 콩 나라는 법이 없다는 말이지. 한국의 속담을 들어가며 설명한 그에게 '그래서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옳은 것이냐?' 라고 책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하자 모르겠다고 답한다. 그래서 저런 미신도 믿어보기도 하는거지, 혹시 모르잖아.

 

  어릴때부터 보아온 준면은 보는 버릇이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 에딘버러 성, 로열 마일 거리부터 거슬러 책 혹은 드라마까지. 듣는 음악조차 시각적으로 바꾸는 옆자리에서 즐기는 생각하기란 사색에 잠기는 것과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넌 맨날 자거나 멍 때리기 일쑤라며 가끔 핀잔을 주곤 했지만, 그가 이어폰을 끼고 흐르는 음악에 날씨와 풍경을 대입하고 있으면 나머지 한 쪽은 내 몫이었다. 추적추적 비가 쏟아지는 스코틀랜드와 하늘거리는 커튼을 쳐둔 방안의 낮은 채도. 겨우 스미듯 들어온 빛에 윤곽이 드러난 침대로 고개를 들면 주름진 시트에 걸터 앉아 책을 읽거나 커튼을 조금 걷어내고 툭툭 떨어진 물방울이 미끄러져 내리는 창밖을 정지된 화면이라도 되는 듯 눈에 담는 단정한 모습이 있었다. 그 시간은 꽤 좋았다. 사방의 소음조차 색이 옅어지고 마는 시간에 앉아있는 그가.

 

 - 크리스.

 

  소리내어 대답하는 대신 곁에 다가간다. 잘 닦여진 길로만 가다보면 우연의 확률은 극히 적어진다. 그렇게 꾸며진 사람들과의 관계만을 유지해오던 준면은 혼자서 어디까지고 걸어갈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어깨를 짓누르는 돌덩이들과, 그 무게쯤이야 익숙해졌다는 듯 구는 것과, 정작 누구도 허락하지 않는 막. 밖에 나갔다 올래? 흰 손가락이 창 너머를 짚는다. 푹 젖어버린 길 건너편의 적색 건물과 금색 글씨가 박힌 간판의 빵집은 서로 자주 찾는 곳이었다. 작은 체구는 크게 아픈 곳 없이 건강했지만 유독 에딘버러에 와서는 감기가 잦다. 벌써 잠긴 목소리에 고개를 저었다. 일단 한숨 자고 나서. 대답에 미련이 남는 듯 다시 밖을 보다 협탁에 놓인 책을 집는다. 정말 혼자인 것과 혼자여야 한다는 몸부림은 다르다. 흠집없이 깨끗한 양장본을 위로 빼앗아 바닥에 내려놓고 남은 약과 물컵을 가져와 내밀자 알 수 없다는 시선은 자신을 쫓았다.

 

 - 한국인은 약이 없으면 안 돼?

 - 괜찮은데.

 - 내가 먹여주는건 싫잖아.

 - 그건 나름대로.

 

  잠깐 생기를 띄던 눈은 손에 들린 약과 물을 채간다. 단숨에 털어넣고 움직이는 목울대. 나를 가장 견고하게 부르는 목소리.

 

 

 "너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거야?"

 "…."

 "그 정도면 너도 할 만큼 했어."

 

 

  당장 중국으로 돌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 방을 차지하고 누워있는 몸뚱아리가 영 불편한지라 민석은 들고 있던 펜을 던지듯 놓았다. 그래서 어떡할건데? 어차피 돌아선 마음이고 너도 동의하잖아. 엉킨 실타래는 버리는 게 답이라며? 담아두었던 것들을 쏟아내듯 풀고 나서야 감겼던 눈꺼풀이 뜨인다. 한동안 정적이 이어지고 누군가 한숨을 내쉬자, 굳게 닫혔던 방문이 벌컥 열리며 요란스러운 발소리가 들렸다.

 

 

 "크리스! 나 마마 봤어."

 "황타오 너 그 자식 보고 마마라는 이상한 호칭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비 맞고 있었어. 그래서 내가 우산 주고 왔어."

 

 

  해가 쨍쨍한 날씨에 대뜸 비를 외치며 등장한 타오는 새카만 머리를 털어가며 민석에게 조용히 항의했다. 마마보고 마마라고 안하면 뭐라고 불러? 음소거 대신 격한 몸짓 발짓이 추가된 행동에 뒤이어 이마를 짚는다. 둘이 오고 난 이후로 이 방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지금 어딨어."

 "운동장 뒤에 있잖아. 거기."

 

 

  나른한 기운을 완전히 떨치지 못하고 일어난 몸이 느리게 사라지자 기어이 등짝을 얻어맞은 타오가 앓는 소리를 냈다. 아파! 조용히 하지 않으면 다시 내쫓겠다며 으름장을 놓은 뒤 끄트막에 보았던 문장을 찾는다. 잠깐 내다본 바깥은 먹구름 하나 없는 완연한 봄이었다.

 

 

 "근데 뜬금없이 왠 비?"

 "바람이 불어서 꽃이 떨어져. 그거 때문에 마마 울 것 같았어."

 

 

  다시 깊은 한숨이 채워진다. 정말 분홍색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 우 오빠 이 어려운 남자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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