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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is the love? -6.5

31KKH 2014. 3. 28. 08:39

 

 

 

 

 

where is the love?

-6.5

 

 

 

 

 

 누구든 본능적으로 빈 곳을 채우길 갈망한다. 내면 깊이 웅크린 고독함은 아주 느리게 움직여 판도라의 상자에 집히는 모든 걸 집어넣고 잠궈버렸다. 종인은 눈가에 고인 물을 마디로 찍어냈다.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데다 아랫배가 꽉 뭉쳐서 잘게 떨리고 있었다. 방금 뭐, 뭐한, 푸하… 경련하던 몸이 바닥에 쓰러지자 찬열은 들고 있던 조이스틱을 던졌다. 한번 웃으면 연쇄 작용이 일어나, 사소한 행동마저도 겉잡을 수 없이 번진다. 간헐적으로 들리던 호흡마저 삼킨 웃음에 종인은 바닥을 긁었다.

 

 이런 식으로 잊을 수도 있구나.

 

 앓은 배를 쥐어가면서 짜낸 눈물, 진심으로 이 상황이 즐거웠다. 기나긴 꿈을 꾸었다. 얼마나 길었는지 뼈 마디마디가 뻐근할 정도로 헤어나지 못한 지독한 꿈. 티비에는 컨트롤에 미숙한 남자가 이끈대로 잔디를 질주한 캐릭터가 괴로워하고 있었다. 무릎을 꿇은 처참한 등이 비춰지자, 관객들의 야유와 휘파람이 섞인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결과는 자살골이라 찬열은 본인이 게임에 소질이 없었던가 고민하길 그만두었다. 힘들게 웃는 모습이 이젠 안쓰러워 보이려고 해서 큰 손바닥으로 정수리를 마구 문댄다. 깍지 사이로 힘있는 머리카락이 빠져나간다. 손에 넣으면 잡힐 것 같았는데. 유례없이 부드럽게 물든다. 둥근 볼 안의 휘핑크림. 돋아난 힘줄을 느끼며 백현은 들고 온 것들을 요란하게 놓았다.

 

 

 "왔어?"

 "왔어? 이렇게 많이 사오라고 시킬거였으면,"

 

 

 미묘하게 비켜간 시선을 따라 돌아보니 달랑 봉다리 하나 든 자신과 달리 경수는 양 손이 묵직한 채다. 과자나 마른 안주거리가 대부분인 내용물과 비교되게, 막걸리가 든 반대편 봉투엔 부침가루와 대파가 길쭉한 대를 내밀었다. 안 들어가? 어느새 나란히 앉아있던 종인은 금새 시끌벅적해진 틈에 일어선 찬열을 응시했다. 많은 것을 내포한 너른 등. 그의 뒷모습은 시작과 끝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좋은 걸 알려주겠다더니 바닥에 신문지가 깔리고, 가스 버너와 함께 즉석에서 부침개 반죽이 만들어졌다. 진즉 오징어 다리를 문 백현이 과자를 뜯어내자 경수는 수에 맞게 밥 그릇을 놓는다. 신입생 오티도 제대로 참여하지 않았던 종인은 걸쭉해진 것들을 휘젓던 찬열이 달궈진 팬에 기름을 두르자 몸이 기우는 것도 잊었다. 사소한 것에 깃든 기대감을 찾아낸 발견자와, 레시피에 약간의 정성이 첨가된 요리로부터 오는 행복감.

 

 

 "우리 구면이지? 저번에 콩나물 해장국 같이 먹었던 친구."

 "아, 네."

 "술이 답은 아니지만 가끔은 편해지는 것도 좋지."

 

 

 차가운 물을 넣고 반죽하면 겉이 바삭바삭하게 익어서 맛있어. 비 오는 날에도 잘 안해주는 박찬열 표 부침개라며 백현이 너스레를 떠는 사이, 빈 그릇에 시큼함이 채워진다. 부어라 마셔라 까진 아니어도 자연스럽게 오가는 술잔에 나무 젓가락을 쉴새없이 놀렸다. 빠르게 비워지는 잔과 주고받는 대화에 저 밑에서부터 무언가 고느넉이 채워진다. 오징어를 골라내던 종인은 자신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젓가락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와르르 쏟아질 것 같은 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람빠진 웃음이 새고 말았다.

 

 

 "인마, 너네 누가 오징어만 골라먹으래. 그럼 나머지는 누가 먹냐!"

 "너 파전에 들어간 오징어는 안 먹잖아."

 "진짜요? 난 파전에 들어간 것만 먹는데…"

 "너넨 편식때문에 못 큰 거다."

 

 

 평균적으로 작은 백현과 함께 경수도 무언의 눈빛을 보낸다. 작은 건 사실이잖아. 으쓱여보인 찬열은 대치 상황이 마냥 재밌는지 풀어진 표정의 종인을 돌아보았다. 아. 뒤집개를 한번 들어보이고, 파전을 콕 찍는다. 벌어진 입을 한참 바라보다 젓가락을 들어 잘 익은 귀퉁이를 찢었다. 한 잔 넘기자마자 귀가 벌개진 백현은 빈 막걸리 통에 수저를 넣고 노래를 불렀다. 마른 하늘을 달려…… 열어둔 창으로 제법 더운 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온다. 초여름 밤 청춘의 단면. 필름처럼 자르고 붙일 수 있다면, 그래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요리에 집중해 굽어진 등을 안주삼아 탁한 술을 넘긴다. 취했어? 자글자글한 튀김소리를 눈으로 담고 있자니 정신에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 점멸한다. 곁에 있던 찬열은 고개를 저을 때마다 나풀거리는 머리카락을 쓸었다.

 

 

 "나중에 소개시켜줄게. 막걸리 직접 빚는 곳이 있는데, 거기 생약주가 엄청 맛있거든. 탁하지도 않아서 깔끔하고, 꽃향기도 나."

 

 

 자꾸 손이 간다. 멀쩡해 보이던 입술이 한 뼘 정도 불어서 양반 다리를 한 종인은 다시금 찬열에게 기댔다.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아카시아 향도 코끝을 맴돈다. 세훈과 마시던 술은 그렇게 썼는데, 여기선 달디 달다. 자꾸 새어나오는 웃음에 종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꼼짝않고 앉아있던 경수는 백현이 자체 제작한 마이크를 건네는 바람에 얼떨결에 바톤을 넘겨받았다. 도경수 한 곡 뽑아봐! 백현의 주도 하에 박수를 친다. 좋다. 가라앉은 웃음과 기대기에 적당한 몸, 모든 것에 흔들리고 있었다.

 

 

 내 사랑 그대, 내 곁에 있어줘

 이 세상 하나뿐인 오직 그대만이

 힘겨운날에 너 마저 떠나면

 비틀거릴 내가 안길곳은 어디에

 

 

 노래가 아득히 멀어져간다. 푹 떨어져 벗어나려는 머리를 턱을 받쳐 들어내자 거진 감겼던 눈꺼풀이 뜨였다. 톡 쏘는 맛에 얼얼해진 혀가 찾아든다. 진득하게 맞닿은 입술이 절은 숨을 넘겼다. 갑작스런 입맞춤에도 찬열은 종인의 마른 뼈를 더듬었다. 언어가 뭉개지자 감각이 남는다. 먼저 찾아든 종인을 받아낸 찬열은 끈끈한 점막을 훑었다. 아주 느리게, 수많은 시계 태엽을 감는다. 한 줌씩 호흡을 잠식해가던 찬열은 옷깃을 쥔 종인의 뒷목에서부터 미미한 진동을 느꼈다.

 

 그게 뭐냐, 선곡하고는… 노래에 대해 타박하려던 백현의 말이 멎어가자 경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차하면 만들 심산으로 사왔던 재료들을 꺼낸다. 뺨을 문지른 백현은 엉거주춤하게 서서 경수에게 가려다, 열도 식힐 겸 베란다로 향했다. 희미하게 맴도는 막걸리와 기름이 벤 옷을 털어낸다. 사람이 어디까지 변할 수 있나. 내려다 본 서울의 밤은 가로등이 곳곳을 붉게 물들인 상태로 흘러간다.

 

 - 언젠가 뭐든 변하고 말잖아요.

 

 종인은 그 말을 끝으로 깜빡 졸았다 깨어났다. 기나긴 꿈을 꾸었다. 마라톤 선수처럼 터질듯한 심장을 부여쥐고 달렸던 레이스의 종지부. 간단하게 새콤달콤한 골뱅이 무침을 만들어낸 경수와 한 층 업된 백현의 등장으로 술자리는 재차 달아올랐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 파괴는 선물이야. 파괴가 있어야 변화가 있지.

 

 술잔이 엎어지고, 세상이 거꾸로 뒤집힌 와중에 낮은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